한국어언어 선택

제9화편들거나, 빠지거나, 아니면 불타거나히에이산 방화

적에게 진을 내준 성스러운 산에 노부나가는 통보한다. "내 편에 서거나, 손을 떼거나, 아니면 불탄다." 한 해 뒤의 밤, 산은 불길에 휩싸이고 살려 달라는 목소리도 닿지 않는다. 늙은 기록자의 붓이 그 밤 앞에서 멈춘다.

20페이지전편 무료 · 회원가입 불필요

다른 언어로 읽기:日本語English简体中文繁體中文EspañolFrançais

1 / 20
2 / 20
3 / 20
4 / 20
5 / 20
6 / 20
7 / 20
8 / 20
9 / 20
10 / 20
11 / 20
12 / 20
13 / 20
14 / 20
15 / 20
16 / 20
17 / 20
18 / 20
19 / 20
20 / 20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 예고제10화 황금 해골

이 작품은 여기까지예요. 다음은 이 작품을 추천해요

다음 화가 나오면 바로 읽을 수 있게 작품 페이지를 북마크해 두세요: 오다 노부나가이 작품의 RSS

새 화 공개 소식을 SNS로 알려 드려요. 팔로우해 주세요:ThreadsBluesky (영어)

이번 화 줄거리

이 이야기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타 규이치가 쓴 일대기 『신장공기』에 실려 있습니다. 사건의 출발점은 불이 나기 한 해 전인 겐키 원년(1570년)입니다. 노부나가와 싸우던 아자이·아사쿠라 군이 교토를 내려다보는 히에이산에 올라 진을 쳤습니다. 노부나가는 히에이산의 스님들에게 조건을 내겁니다. 자기 편이 되면 영지 안의 절 땅을 돌려주겠다고 맹세하고, 출가자라 한쪽을 들 수 없다면 중립만 지켜도 된다고 했습니다. 둘 다 거부하면 중심 전각인 곤폰추도부터 산노 21사까지 모두 태우겠다고 경고했지요. 그러나 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원전Oda Nobunaga: The Demon King of the Warring States — 일본 · Around 1610

RSS

이 화의 바탕이 된 원작 이야기

히에이산 방화란? 오다 노부나가의 1571년 공격과 신장공기

한마디로: 히에이산 방화는 오다 노부나가가 적에게 진을 내준 히에이산에 자기 편이 되거나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거부당하자 1571년 산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베어 죽이는 이야기로, 오타 규이치의 『신장공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규이치는 수천 구의 시신이 흩어졌다고 적으면서, 스님들을 비난하는 동시에 이 참상을 애처롭게 여깁니다.

원전 줄거리: 『신장공기』 속 히에이산 방화

이 이야기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타 규이치가 쓴 일대기 『신장공기』에 실려 있습니다. 사건의 출발점은 불이 나기 한 해 전인 겐키 원년(1570년)입니다. 노부나가와 싸우던 아자이·아사쿠라 군이 교토를 내려다보는 히에이산에 올라 진을 쳤습니다.

노부나가는 히에이산의 스님들에게 조건을 내겁니다. 자기 편이 되면 영지 안의 절 땅을 돌려주겠다고 맹세하고, 출가자라 한쪽을 들 수 없다면 중립만 지켜도 된다고 했습니다. 둘 다 거부하면 중심 전각인 곤폰추도부터 산노 21사까지 모두 태우겠다고 경고했지요. 그러나 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겐키 2년(1571년) 9월 12일, 양력으로는 9월 말에 노부나가의 군세가 산을 에워쌉니다. 기록에 따르면 전각과 신사, 불상, 승방, 경전이 한 채도 남김없이 불탔습니다. 산 아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맨발로 하치오지산으로 달아나 신사에 몰렸지만, 병사들이 사방에서 밀고 올라와 승려와 속인을 가리지 않고 베었습니다.

이름난 고승과 아름다운 여인, 어린 소년들도 붙잡혀 끌려왔습니다. 이들은 악한 승려라면 벌을 받아도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빌었지만 노부나가는 허락하지 않았고, 모두 목이 베였습니다. 규이치는 수천 구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고 적고, 노부나가가 여러 해 묵은 울분을 풀었다고 맺습니다. 이후 시가군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주어졌고, 그는 사카모토에 자리 잡았습니다.

히에이산은 어떤 곳이었나: 시대 배경

히에이산에는 천태종의 본산 엔랴쿠지가 있습니다. 8세기 말 무렵 승려 사이초가 세운 절로, 교토의 북동쪽에 자리해 도읍을 지키는 영적인 수호처로 여겨졌습니다. 『신장공기』도 이 역할을 언급합니다.

전국시대의 히에이산은 넓은 영지와 무장한 승려를 거느린 세속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적이 그 산에 진을 치면 노부나가에게는 곧바로 군사적 위협이 됩니다. 1570년의 대치는 화친으로 끝나 군세가 물러났습니다. 규이치의 서술대로라면 방화는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경고한 뒤 한 해 뒤에 실행한 일입니다.

비난과 연민 사이: 기록자 규이치의 시선

규이치는 스님들을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 음란에 빠졌으며, 생선과 새고기를 먹고, 금은 뇌물에 눈이 멀었고, 노부나가의 적이 산에서 제멋대로 하게 두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노부나가의 사람이었고, 이 대목에는 스님들 쪽의 입장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규이치가 승리의 기록으로만 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 일이 애처롭다고 쓰고, 처형 장면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로 묘사합니다. 비난과 연민이 풀리지 않은 채 나란히 놓인 것이 이 짧은 대목의 힘입니다.

역사 논쟁과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

피해 규모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산에서 이루어진 발굴 조사를 근거로, 1571년에 불탄 건물이 기록에서 받는 인상보다 적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산꼭대기가 아니라 사카모토에 살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망자 수도 자료마다 달라 정확히 정할 수 없습니다.

널리 알려진 두 이야기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노부나가의 유명한 별명 ‘제6천 마왕’은 『신장공기』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편지에 다케다 신겐과 주고받은 일화로 전해지며, 이를 방화와 바로 잇는 것은 후대의 해석입니다. 가신 사쿠마 노부모리가 공격을 말렸다는 이야기도 이 대목이 아니라 후대의 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화에서 달라진 점

세 가지 선택지, 방화, 사람들의 피란, 거절당한 애원, 미쓰히데가 받은 보상은 원전에서 가져온 뼈대입니다. 반면 불타는 밤 노부나가의 침묵은 만화의 연출입니다. 원전에는 그날 그가 한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만화는 이 빈자리를 의도적인 침묵으로 그렸습니다. 조건을 통보하는 장면에서는 분명히 말을 합니다.

규이치가 인물로 등장하는 것도 창작입니다. 원전은 그를 현장에 두지 않고 망설임도 적지 않으므로, 붓을 멈추는 늙은 기록자는 글에 담긴 복잡한 감정에서 만들어 낸 모습입니다. 협상의 구체적인 말투, 살려 달라는 개개인의 목소리, 이름 없는 사내들의 동요도 덧붙인 부분입니다. ‘마왕’이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암시 역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작품의 해석입니다.

폭력은 주로 불길과 그림자, 흩어진 경전으로 암시하며, 아이들의 죽음은 직접 보여 주지 않습니다.

만화로 읽기

이 사건을 한 편의 이야기로 따라가 보고 싶다면 Manga Portal에서 『오다 노부나가 ―신장공기・마왕이라 불린 남자의 생애―』 제9화 「편들거나, 빠지거나, 아니면 불타거나 ―히에이산 방화―」를 읽어 보세요. 모든 화가 무료이고 회원 가입도 필요 없으니, 첫 화부터 읽어도 좋고 이 페이지에서 바로 이어 읽어도 좋습니다.

이 화의 등장인물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산에 세 가지 선택지를 내밀고, 거부당하자 산을 불태우며 어떤 애원도 받아들이지 않는 무장입니다.
오타 규이치
노부나가의 가신이자 『신장공기』의 저자로, 스님들을 비난하면서도 학살을 애처롭게 기록합니다.
히에이산의 스님들
노부나가의 조건을 거부한 승려들로, 규이치는 이들이 타락했다고 고발하지만 이는 노부나가 쪽에서 쓴 평가입니다.
산 아래 사람들
맨발로 하치오지산까지 달아났다가 학살에 휘말리는 이름 없는 남녀노소입니다.
아케치 미쓰히데
공격 뒤 시가군을 받아 사카모토에 자리 잡은 가신으로, 이 대목 밖의 일이지만 1582년 혼노지에서 노부나가에게 등을 돌립니다.
아자이·아사쿠라 군
노부나가와 싸우던 두 무장 가문의 군대로, 1570년 히에이산에 진을 치면서 갈등의 발단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다 노부나가는 왜 히에이산을 불태웠나요?

1570년 히에이산이 적인 아자이·아사쿠라 군에게 진을 내주고, 자기 편이 되거나 중립을 지키라는 제안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는 거부하면 불태우겠다고 경고했고 1571년에 이를 실행했습니다. 규이치는 스님들의 타락도 정당화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히에이산 방화로 몇 명이 죽었나요?

『신장공기』는 수천 구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고 적지만 정확한 수는 밝히지 않습니다. 사망자 수는 자료마다 다르고, 피해 규모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산에서 여자와 아이도 죽였나요?

『신장공기』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여인과 어린 소년을 포함한 사람들이 붙잡혀 목숨을 빌었지만,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목이 베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에이산 방화 때문에 노부나가를 마왕이라고 부르나요?

직접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제6천 마왕’이라는 말은 『신장공기』에 나오지 않으며,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편지에 다케다 신겐과 주고받은 일화로 전해집니다. 방화와 연결하는 것은 후대의 시각이고, 만화도 이를 하나의 해석으로 사용합니다.

『신장공기』는 어떤 책인가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타 규이치가 쓴 노부나가의 일대기입니다. 노부나가의 생애를 아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지만, 저자가 그를 섬긴 사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만화 처음부터 읽기(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