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년, 스루가·도토미·미카와를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 오와리로 쳐들어왔습니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타 규이치가 쓴 『신장공기』에 따르면 요시모토의 군세는 4만 5천 명이었고, 구쓰카케에 진을 쳤습니다. 이마가와군이 오다카성에 군량을 들여보내자, 오다 쪽 장수 사쿠마 다이가쿠와 오다 겐바는 날이 밝으면 국경의 와시즈·마루네 요새가 공격당할 것이라고 기요스성에 알렸습니다. 그날 밤 노부나가는 작전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잡담만 나누다가 밤이 늦었다며 가로들을 돌려보냈고, 가로들은 운이 다하면 머리까지 둔해진다고 비웃으며 물러났습니다.
한마디로: 오케하자마 전투는 1560년 오다 노부나가가 오와리로 쳐들어온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해, 폭우가 갠 직후 요시모토를 쓰러뜨린 싸움입니다. 전날 밤 작전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던 노부나가가 새벽에 단 여섯 기로 성을 나서는 과정은 오타 규이치의 『신장공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케하자마 전투 줄거리: 전날 밤의 침묵
1560년, 스루가·도토미·미카와를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 오와리로 쳐들어왔습니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타 규이치가 쓴 『신장공기』에 따르면 요시모토의 군세는 4만 5천 명이었고, 구쓰카케에 진을 쳤습니다. 이마가와군이 오다카성에 군량을 들여보내자, 오다 쪽 장수 사쿠마 다이가쿠와 오다 겐바는 날이 밝으면 국경의 와시즈·마루네 요새가 공격당할 것이라고 기요스성에 알렸습니다.
그날 밤 노부나가는 작전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잡담만 나누다가 밤이 늦었다며 가로들을 돌려보냈고, 가로들은 운이 다하면 머리까지 둔해진다고 비웃으며 물러났습니다.
새벽 무렵 요새가 공격받는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노부나가는 「아쓰모리」의 한 대목을 추었습니다. 인간의 50년을 스쳐 가는 꿈에 견주며 죽지 않는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내용입니다. 그는 소라고둥을 불게 하고 갑옷을 입은 뒤 선 채로 밥을 먹고, 투구를 쓰고 말에 올랐습니다. 시동 다섯 명과 자신을 합쳐 단 여섯 기로, 약 12km 떨어진 아쓰타까지 내달렸습니다.
오케하자마로 향한 진군
아쓰타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와시즈와 마루네가 이미 함락된 듯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이때 노부나가에게는 여섯 기와 보병 200명 정도뿐이었습니다. 밀물로 해안 길이 막혀 위쪽 길로 단게 요새와 젠쇼지 요새로 서둘렀고, 그곳에 병력이 모여들었습니다.
한편 요시모토는 요새를 빼앗은 데 만족해 오케하자마에서 군을 쉬게 하고 노래 세 곡을 부르게 했습니다. 삿사 하야토노쇼와 센슈 시로가 약 300명으로 공격했지만, 두 사람은 기마 무사 50명가량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요시모토는 귀신도 자신을 당하지 못한다며 기뻐하고 느긋하게 머물렀습니다.
노부나가가 나카지마 요새로 나아가려 하자 가로들은 말 재갈을 붙잡고 말렸습니다. 깊은 논 사이로 한 기씩만 지나는 길이라 적은 병력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이를 뿌리치고 2천 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적은 밤새 행군하고 싸워 지쳤지만 우리는 새 병력이며, 운은 하늘에 있으니 소수라도 대군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적의 목을 베느라 멈추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습니다.
폭우 그리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최후
군세가 산기슭에 이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신장공기』는 돌과 얼음을 던지듯 비가 이마가와 병사들의 얼굴을 때렸고, 오다군은 등으로 비를 맞았다고 적습니다. 구쓰카케 고개의 큰 녹나무가 쓰러지자 사람들은 아쓰타의 신이 편을 드는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렸습니다.
하늘이 개자 노부나가는 창을 들고 돌격을 외쳤습니다. 이마가와군은 쏟아진 물처럼 무너져 무기와 깃발, 요시모토의 칠한 가마까지 버렸습니다. 요시모토를 둘러싼 기마 무사 약 300명은 거듭된 싸움으로 50명가량까지 줄었고, 노부나가도 말에서 내려 젊은 무사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핫토리 고헤이타가 먼저 달려들었다가 무릎을 베여 쓰러졌고, 모리 신스케가 요시모토를 베어 목을 거두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지금도 갈리는 견해
이 싸움은 각지의 영주가 땅과 생존을 걸고 싸우던 일본 전국시대의 일로, 이 승리로 노부나가는 유력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아쓰모리」는 고와카마이라는 공연 전통의 작품으로, 겐페이 전쟁에서 죽은 젊은 무사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신장공기』는 그가 왜 이 곡을 골랐는지, 왜 전날 밤 침묵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등장합니다. 당시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라는 이름의 이마가와 측 장수로, 오다카성에 군량을 넣고 요새에서 싸운 뒤 오다카에서 쉬고 있어 마지막 전투에는 없었습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신장공기』는 전투 연도를 잘못 적었고, 4만 5천도 이 책의 수치일 뿐 현대에는 2만 5천 안팎으로 훨씬 적게 보는 추정이 많습니다. 물에 만 밥을 먹었다거나 아쓰타 신궁에서 기도해 길조를 얻었다는 장면은 후대의 대중적인 이야기에 나옵니다. 몰래 우회해 기습했다는 옛 설명에 대해, 지금은 좀 더 정면에 가까운 진격으로 읽는 역사가가 많습니다. 요시모토의 목표도 교토 진출이었다는 옛 설과 국경 지역 장악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만화에서 달라진 부분
침묵의 밤, 가로들의 비웃음, 춤, 선 채로 먹는 식사, 여섯 기의 출진, 폭우, 요시모토의 죽음은 모두 원전에 있는 사건입니다. 만화의 "돌아가라"라는 말은 밤이 늦었다며 돌려보낸 원전의 장면을 짧고 날카롭게 다듬은 것입니다.
그 밖에는 창작입니다. 원전은 잡담을 했다고만 적으므로 대화 내용과 표정, 침묵의 연출은 만들어 낸 것이며, 다만 노부나가의 속마음을 설명하는 독백은 넣지 않았습니다. 춤의 조명과 움직임, 아쓰타까지의 질주와 병사들이 모이는 모습, 요시모토의 외모·옷차림·가마 디자인, 진중 생활 대부분, 폭우의 시각적 표현, 가로들의 구체적인 말투, 마지막 난전의 동작도 상상으로 그렸습니다.
만화로 읽기
침묵에서 폭우로 이어지는 이 긴장감을 그림으로 따라가 보고 싶다면, Manga Portal의 『오다 노부나가 ―신장공기・마왕이라 불린 남자의 생애―』 제4화를 펼쳐 보세요. 전 화 무료이고 회원 가입도 필요 없으니, 여기서 시작해 편한 속도로 이어 읽으시면 됩니다.
이 화의 등장인물
오다 노부나가
오와리의 젊은 영주로, 가로들에게 작전을 숨긴 채 적은 수로 출진해 오케하자마에서 돌격을 이끈 인물입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
스루가·도토미·미카와의 강대한 영주로,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를 침공했다가 초반 승리에 취해 오케하자마에 머문 인물입니다.
기요스의 가로들
노부나가의 침묵을 비웃고, 뒤에는 말 재갈을 붙잡으면서까지 진격을 말린 이름 없는 중신들입니다.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
훗날 천하를 쥐는 인물로, 이때는 이마가와 편에서 오다카성에 군량을 넣고 요새에서 싸웠습니다.
핫토리 고헤이타
오다군의 호위 기마 무사로, 요시모토에게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가 무릎을 베여 쓰러졌습니다.
모리 신스케
오다군의 호위 기마 무사로, 요시모토를 베어 그 목을 거둔 인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케하자마 전투는 어떤 전투인가요?
1560년 오다 노부나가가 오와리에 쳐들어온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군을 오케하자마에서 공격한 전투입니다. 거센 소나기가 갠 직후 오다군이 이마가와군을 무너뜨리고 요시모토를 죽였습니다.
오케하자마 전투의 병력 차이는 어느 정도였나요?
『신장공기』는 요시모토의 군을 4만 5천 명, 나카지마 요새로 나아갈 때의 노부나가군을 2천 명 미만으로 적습니다. 현대에는 이마가와군을 2만 5천 안팎으로 훨씬 적게 보는 추정이 많지만, 그래도 노부나가군보다 크게 많았습니다.
노부나가는 왜 출진 전에 아쓰모리를 추었나요?
『신장공기』는 춤과 덧없는 인생을 노래한 구절만 기록할 뿐 이유는 적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행동으로 보는 독자가 많지만, 이는 원전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신장공기』에 따르면 모리 신스케가 요시모토를 베고 목을 거두었습니다. 핫토리 고헤이타가 먼저 달려들었지만 무릎을 베여 쓰러졌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오케하자마 전투에 참가했나요?
당시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라는 이름으로 이마가와 편에서 이 원정에 참가했습니다. 오다카성에 군량을 넣고 요새에서 싸웠지만, 마지막 전투 때는 오다카에서 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