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노부나가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잃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웃 나라 미노의 영주 사이토 도산은 노부나가의 장인이었습니다. 『신장공기』에 따르면 도산은 아들 사이토 요시타쓰와 사이가 틀어졌고, 요시타쓰는 두 동생을 불러들여 죽인 뒤 아버지에게 공공연히 등을 돌렸습니다. 1556년 4월, 부자는 나가라강 근처에서 맞붙었습니다. 병력이 훨씬 많았던 요시타쓰가 이겼고 도산은 전사했습니다. 노부나가는 도우러 오와리를 떠나 미노의 오라까지 나아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군을 물리면서 스스로 맨 뒤를 지켰고, 추격해 오는 미노 군을 뒤로하고 배로 강을 건넜습니다. 이 틈을 노려 오와리 안의 적들이 움직였습니다.
한마디로: 이노 전투는 1556년 오다 노부나가가 동생 오다 간주로(노부카쓰)를 받드는 가신들과 싸워 이긴 전투로, 오타 규이치가 쓴 『신장공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부나가는 어머니의 간청으로 동생을 한 번 용서했지만, 간주로가 다시 모반을 꾀하자 병을 핑계로 기요스성에 불러들여 죽였습니다.
원전 줄거리 ①: 사이토 도산의 죽음
이야기는 노부나가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잃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웃 나라 미노의 영주 사이토 도산은 노부나가의 장인이었습니다. 『신장공기』에 따르면 도산은 아들 사이토 요시타쓰와 사이가 틀어졌고, 요시타쓰는 두 동생을 불러들여 죽인 뒤 아버지에게 공공연히 등을 돌렸습니다.
1556년 4월, 부자는 나가라강 근처에서 맞붙었습니다. 병력이 훨씬 많았던 요시타쓰가 이겼고 도산은 전사했습니다. 노부나가는 도우러 오와리를 떠나 미노의 오라까지 나아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군을 물리면서 스스로 맨 뒤를 지켰고, 추격해 오는 미노 군을 뒤로하고 배로 강을 건넜습니다.
이 틈을 노려 오와리 안의 적들이 움직였습니다. 오다 가문의 다른 갈래인 이와쿠라의 오다 이세노카미가 요시타쓰 편에 서서 기요스 근처 마을을 불태운 것입니다. 바깥의 후원자를 잃은 노부나가는 이제 가까운 곳에도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원전 줄거리 ②: 이노 전투
다음 위협은 집안 안에서 나왔습니다. 가문의 중신인 하야시 사도노카미·하야시 미마사카노카미 형제와 무장 시바타 곤로쿠(훗날의 시바타 가쓰이에)가 노부나가의 동생 간주로를 주군으로 받들고 노부나가의 영지를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1556년 8월 24일, 양쪽은 이노에서 싸웠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노부나가의 군세는 700명이 채 안 되었고, 상대는 시바타가 약 1,000명, 하야시 미마사카노카미가 약 700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바타 군에 밀려 노부나가 쪽에서 전사자도 나왔습니다. 그때 노부나가가 크게 노하여 고함을 치자, 같은 가문의 병사들은 주군의 위엄을 두려워해 흔들리다 끝내 달아났습니다. 노부나가는 하야시 미마사카노카미를 직접 베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한 번은 용서, 두 번은 없다
전투 뒤 노부나가는 간주로의 거성 스에모리 주변을 공격했습니다. 그곳에 살던 어머니는 사람을 보내 용서를 빌었고, 노부나가는 간주로와 시바타, 하야시 사도노카미를 용서했습니다. 간주로와 시바타는 어머니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기요스로 와서 사죄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간주로는 다시 이와쿠라와 손을 잡고 새 성채를 쌓으려 했으며, 총애하는 젊은 쓰즈키 구란도에게만 힘을 실어 주고 시바타를 멀리했습니다. 이번에는 시바타가 노부나가에게 모반을 알렸습니다. 노부나가는 병을 핑계로 집에 틀어박혔고, 어머니와 시바타의 권유로 간주로가 문병을 오자 기요스성 안에서 가와지리 히데타카 등 가신들이 그를 죽였습니다. 흔히 1557년 11월 2일의 일로 보지만, 기록의 연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 전국시대의 가족과 권력
15세기 말부터 16세기 말까지 이어진 전국시대에는 같은 집안이라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았습니다. 영주는 중신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중신들은 다른 가족이 더 낫다고 여기면 언제든 편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젊은 노부나가는 ‘천하의 얼간이’라 불릴 만큼 별난 인물로 알려져 있었기에, 예의 바른 동생은 그들에게 손쉬운 선택지였습니다.
『신장공기』는 노부나가를 섬긴 오타 규이치가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기록이라 귀중합니다. 문장은 짧고 담백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지만 사람들의 속마음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노부나가의 첫 큰 싸움이 바로 자기 가족과의 싸움이었고, 오와리 통일이 바깥 정복보다 먼저였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만화에서 바꾼 부분
만화는 기록의 사건 흐름을 따르지만, 극적인 장면을 위해 만든 부분도 있습니다. 오타 규이치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로 나오고, “주군께서는 자비를 베푸셨다. 단 한 번”이라는 맺음말은 만화의 창작입니다. 기록에는 노부나가가 이노에서 고함을 쳤다고만 나오고 그 말은 남아 있지 않으므로, 만화 속 대사도 새로 지은 것입니다. 도산의 죽음을 들은 노부나가의 표정, 두 번째 모반을 알릴 때 시바타의 망설임, 아들을 위해 비는 어머니의 말, 기요스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만화는 후대에 생긴 전승을 일부 넣지 않았습니다. 도산이 죽기 전 미노를 노부나가에게 넘긴다는 편지를 썼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신장공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간주로를 ‘노부유키’, 어머니를 ‘도타 부인’이라 부르는 것도 후대 자료에서 온 이름입니다.
만화로 읽기
이 사건들을 그림으로 보고 싶다면 『오다 노부나가 ―신장공기・마왕이라 불린 남자의 생애―』 제3화 「동생을 용서하는 건 단 한 번 ―이노 전투―」를 읽어 보세요. 도산의 부고부터 기요스에서의 마지막 만남까지 한 편에 담았습니다. Manga Portal에서는 모든 화를 회원가입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제1화부터 읽으면 ‘천하의 얼간이’라 불리던 젊은이가 어떻게 일본을 바꿀 사람이 되어 가는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 화의 등장인물
오다 노부나가
오와리의 젊은 당주로, 적은 병력으로 이노 전투에서 이기고 동생을 한 번 용서했지만 두 번째 모반 뒤에는 그를 죽게 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오다 간주로(노부카쓰)
예의 바른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가신들에게 떠밀려 형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용서받았으나 다시 모반을 꾀해 기요스성에서 죽습니다.
사이토 도산
미노의 영주이자 노부나가의 장인으로, 노부나가의 든든한 후원자였지만 1556년 아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합니다.
사이토 요시타쓰
도산의 아들로, 두 동생을 죽이고 나가라강에서 아버지를 쓰러뜨립니다.
시바타 가쓰이에
이노에서 간주로 측 군세를 이끈 무장으로, 뒤에 간주로에게 밀려나자 두 번째 모반을 노부나가에게 알립니다.
오타 규이치
노부나가를 섬기며 『신장공기』를 쓴 인물로, 만화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로 등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다 노부나가는 왜 동생을 죽였나요?
『신장공기』에 따르면 동생 간주로가 두 번이나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1556년 이노 전투 뒤에는 어머니의 간청으로 용서했지만, 간주로가 다시 모반을 꾀하자 노부나가는 병을 핑계로 그를 기요스성에 불러 죽게 했습니다.
이노 전투는 어떤 전투인가요?
1556년 오와리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동생 간주로를 받든 시바타 곤로쿠·하야시 형제의 군세가 맞붙은 전투입니다. 노부나가는 700명이 채 안 되는 병력이었지만, 그가 크게 고함치자 적병이 겁을 먹고 무너져 승리했습니다.
간주로와 오다 노부유키는 같은 사람인가요?
네,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간주로는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정식 이름은 보통 노부카쓰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부유키’라는 이름은 오늘날 자주 쓰이지만 후대 자료에서 나온 것이며, 『신장공기』는 그를 간주로라고 부릅니다.
사이토 도산은 어떻게 죽었나요?
도산은 아들 사이토 요시타쓰와 사이가 나빠졌고, 요시타쓰는 두 동생을 죽인 뒤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1556년 나가라강 근처에서 병력이 더 많은 요시타쓰 군에 패해 전사했으며, 도우러 온 노부나가는 제때 닿지 못했습니다.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를 배신했나요?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시바타는 이노 전투에서 간주로 측 군세를 이끌고 노부나가와 싸웠습니다. 하지만 용서받은 뒤 간주로에게 밀려나자 두 번째 모반을 노부나가에게 알렸고, 훗날 노부나가의 대표적인 장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