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명으로 성을 빼앗고는 어째서인지 돌려준 뒤 산으로 사라진 남자. 히데요시는 그를 설득하러 산을 오르내린다. 입에 발린 말도 선물도 먼저 간파당하고, 밑천이 다 떨어진 세 번째 방문. 그가 내민 것은 자신의 약함이었다.
이번 화 줄거리
『태합기』는 에도 시대 초기인 간에이 연간(1624~1644)에 의사이자 유학자인 오제 호안이 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기입니다.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 뒤에 나온 책으로, 현대적인 역사서보다는 생동감 있는 문학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기록이 아니라 놀라운 출세 이야기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무대는 1560년대입니다. 오와리(지금의 아이치현 서부)를 다스리는 오다 노부나가는 이웃 나라 미노(지금의 기후현 남부)를 손에 넣으려 합니다. 미노의 주인은 사이토 가문의 젊은 영주 사이토 다쓰오키입니다.
한마디로: 다케나카 한베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책사로, 전승에 따르면 열여섯 명 안팎의 수하만으로 주군 사이토 다쓰오키의 이나바산성을 빼앗았다가 반년쯤 뒤 돌려주고 산으로 물러난 인물입니다. 그는 훗날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고, 이나바산성은 결국 함락되어 미노는 오다 노부나가의 손에 들어갑니다. 오제 호안의 『태합기』가 그린 히데요시 출세담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태합기』 속 미노 공략 줄거리
『태합기』는 에도 시대 초기인 간에이 연간(1624~1644)에 의사이자 유학자인 오제 호안이 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기입니다.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 뒤에 나온 책으로, 현대적인 역사서보다는 생동감 있는 문학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기록이 아니라 놀라운 출세 이야기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무대는 1560년대입니다. 오와리(지금의 아이치현 서부)를 다스리는 오다 노부나가는 이웃 나라 미노(지금의 기후현 남부)를 손에 넣으려 합니다. 미노의 주인은 사이토 가문의 젊은 영주 사이토 다쓰오키입니다. 히데요시는 아직 노부나가의 가신 가운데 한 명으로, 빠른 판단과 부지런함으로 이름을 알려 가던 때였습니다.
그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이토 가문의 책사 다케나카 한베에가 얼마 안 되는 수하를 이끌고 주군의 성인 이나바산성을 빼앗은 것입니다. 한베에는 시간이 흐른 뒤 히데요시 편에 서서 지략으로 그를 돕습니다. 오다 쪽의 압박은 계속되고, 이나바산성은 흔히 1567년으로 전해지는 시기에 함락됩니다. 다쓰오키는 성을 잃고 미노는 노부나가의 땅이 됩니다. 다만 한베에가 언제 어떻게 히데요시 밑으로 들어갔는지, 성이 함락되기 전인지 후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6명의 성 탈취와 성을 돌려준 이유, 어디까지가 전승일까
생생한 세부 묘사는 대부분 널리 퍼진 전승으로, 호안의 책에 모두 실려 있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성 탈취는 보통 1564년의 일로 봅니다.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베에의 수하는 열여섯이나 열일곱 명 정도였고, 병든 동생을 문병한다는 구실로 무기를 궤짝에 숨겨 성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장인인 안도 이가노카미가 군사를 보내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장 이상한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한베에는 반년쯤 뒤 성을 다쓰오키에게 돌려주고 산으로 물러났습니다. 이유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력을 차지하려던 것이 아니라 방심한 젊은 주군에게 경고하려 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하나의 해석일 뿐 정설은 아닙니다.
유명한 다른 일화들도 불확실합니다. 히데요시가 스노마타에 지은 요새는 전설에서 ‘하룻밤 만에 세운 성’이 되었는데, 크게 부풀려진 이야기입니다. 사이토 가문의 중신 이나바 이요노카미, 우지이에 보쿠젠, 안도 이가노카미가 돌아선 일은 오타 규이치의 『신초코키』 같은 다른 자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리오 요시하루가 뒷길을 안내했다는 이야기나, 신호로 쓴 표주박이 훗날 히데요시의 군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는 후대의 윤색이 많이 더해졌습니다.
전국시대의 눈으로 본 한베에와 삼고초려
이 사건은 지방 영주들이 땅을 두고 싸우고 가신이 주군을 무너뜨리기도 하던 전국시대의 일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성을 빼앗는 일은 충격적이어도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쪽은 오히려 성을 돌려준 일이었고, 한베에가 오랫동안 이야기꾼들을 사로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히데요시의 생애 전체로 보아도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미천한 출신이라 내세울 가문의 이름이 없었으니, 뛰어난 인재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천재 책사가 스스로 그를 택했다는 이야기는 떠오르는 기세를 보여 주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거듭된 방문은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간 중국 삼국시대의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삼고초려’라는 말로 익숙한 고사로, 지도자가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 앞에 몸을 낮춰 그릇을 증명하는 구도입니다.
만화에서 새로 만든 부분
제4화의 극적인 장면들은 만화가 새로 만들었거나 자유롭게 각색한 것입니다. 히데요시가 몇 번이고 산을 오르는 설정은 후대의 전설에서 가져와 극화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도 창작입니다. 입에 발린 말과 선물을 한베에가 먼저 간파하는 장면, 밑천이 떨어진 히데요시가 세 번째 방문에서 자신의 약함을 내미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한베에가 성을 빼앗은 이유, 돌려줄 때의 심정, 은거 생활, 두 사람의 첫 만남, 노부나가가 아닌 히데요시를 택한 까닭처럼 자료가 비워 둔 부분도 만화의 상상입니다. 한베에의 외모와 말투 역시 독자적인 설정으로, 소설이나 드라마, 게임에서 익숙한 병약한 미남 천재의 모습을 일부러 피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결과는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나바산성은 함락되고, 미노는 노부나가의 손에 들어갑니다.
만화로 읽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남자 앞에서 밑천이 떨어진 히데요시가 무엇을 내놓는지 궁금하다면, Manga Portal에서 『태합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 제4화를 읽어 보세요. 전편 무료이고 회원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시작해도 좋고, 제1화로 돌아가 농민의 아들이 천하인이 되기까지의 길을 처음부터 따라가도 좋습니다.
이 화의 등장인물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에서 재치로 출세해 훗날 일본의 천하인이 되는 인물입니다.
다케나카 한베에
적은 수하로 이나바산성을 빼앗은 일로 유명한 사이토 가문의 책사로, 훗날 히데요시를 섬깁니다.
오다 노부나가
오와리의 무장이자 히데요시의 주군으로, 미노 공략을 이끕니다.
사이토 다쓰오키
미노의 젊은 영주이자 한베에의 주군으로, 이나바산성을 한 번은 한베에에게, 나중에는 오다 쪽에 빼앗깁니다.
안도 이가노카미
사이토 가문의 중신이자 한베에의 장인으로, 전승에서는 성 탈취를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다케나카 한베에는 어떤 사람인가요?
다케나카 한베에(1544~1579)는 시게하루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일본 전국시대의 책사입니다. 처음에는 미노의 사이토 가문을 섬겼고 나중에는 히데요시 밑에서 일했습니다. 히데요시의 하리마 원정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흔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베에는 어떻게 16명으로 이나바산성을 빼앗았나요?
전승에 따르면 열여섯이나 열일곱 명 정도의 수하와 함께 병든 동생을 문병한다는 구실로 성에 들어갔고, 무기는 궤짝에 숨겼다고 합니다. 장인 안도 이가노카미가 군사를 보내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모두 『태합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한베에는 왜 빼앗은 성을 돌려주었나요?
확실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권력을 차지하려던 것이 아니라 방심한 젊은 주군 사이토 다쓰오키에게 경고하려 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반년쯤 뒤에 돌려주었다는 이야기 자체도 주로 후대의 전승으로 전해집니다.
히데요시의 삼고초려는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후대의 전설로,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간 이야기와 무척 닮았습니다. 한베에가 히데요시를 섬겼다는 큰 줄거리는 있지만, 거듭 산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만화는 이를 극화임을 전제로 사용합니다.
이나바산성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지금의 기후시에 있는 긴카산 위에 있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성을 차지한 뒤 이 지역 이름을 기후로 바꾸고 본거지를 옮겼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기후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 위에 현대에 다시 지은 성이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