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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이긴 남자는 적의 목을 보고 울었다구리카라 고개 전투/사이토 사네모리

구리카라 고개에서 기소 요시나카는 헤이케의 대군을 밤의 골짜기로 몰아 떨어뜨린다. 이어진 시노하라 전투에서,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홀로 싸우다 쓰러진 늙은 무사의 목을 씻기자, 검게 물들인 머리 아래에서 흰머리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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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의 바탕이 된 신화

구리카라 고개 전투와 사이토 사네모리 | 헤이케 이야기 줄거리

헤이케 이야기 속 구리카라 고개 전투 줄거리

1183년 음력 5월, 헤이케의 대군은 동해 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호쿠리쿠 길을 올라가며 겐지의 장수 기소 요시나카를 치려 했습니다. 두 군대가 마주친 곳은 지금의 도야마현과 이시카와현 경계에 있는 도나미산이었습니다. 요시나카는 수가 훨씬 많은 적과 평지에서 정면으로 맞붙으면 불리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헤이케를 산속에 붙잡아 두었다가, 밤이 되면 구리카라 골짜기로 몰아넣을 작전을 세웁니다.

요시나카는 먼저 근처 언덕에 겐지의 흰 깃발 서른 개를 세워 대군이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이를 본 헤이케는 함부로 내려오지 못하고 산 위의 평평한 곳인 사루노바바에 진을 쳤습니다. 요시나카는 군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숙부 미나모토노 유키이에를 시오산 쪽으로 보내고, 히구치 가네미쓰에게는 적의 뒤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낮 동안에는 열다섯 기, 서른 기, 쉰 기, 백 기씩 조금씩 내보내 화살만 주고받으며 일부러 승부를 미루었습니다.

밤이 되자 뒤로 돌아간 히구치의 군이 구리카라 당 근처에서 함성을 지르고, 앞쪽의 요시나카 본군이 이에 화답했습니다. 앞뒤에서 울리는 함성에 헤이케는 무너졌습니다. 아버지가 떨어지면 아들이, 형이 떨어지면 아우가 뒤따랐고, 사람 위에 말이, 말 위에 사람이 겹쳐 골짜기로 떨어졌습니다. 원전은 7만여 기가 골짜기 하나를 메웠다고 전합니다. 흔히 알려진 '뿔에 횃불을 단 소 떼' 장면은 이 판본이 아니라 다른 이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시노하라 전투와 검은 머리의 수수께끼

요시나카는 시오산에서 고전하던 유키이에를 구한 뒤, 가가 지방의 시노하라로 물러난 헤이케를 다시 무찔렀습니다. 다카하시 나가쓰나는 열여덟 살의 뉴젠 유키시게를 죽은 아들과 겹쳐 보고 한 번 놓아주었다가 오히려 그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모두가 달아나는 가운데, 붉은 비단 옷에 연두색 갑옷을 입은 무사 한 명만이 홀로 돌아서서 싸웠습니다. 데즈카 다로가 그 용기를 칭찬하며 먼저 이름을 밝히고 상대의 이름을 물었지만, 노무사는 생각하는 바가 있다며 끝내 이름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지키려던 데즈카의 가신을 쓰러뜨렸지만, 지치고 나이 든 몸이라 결국 데즈카 다로에게 목을 내주었습니다.

데즈카 다로는 목을 요시나카에게 보이며 말했습니다. 장수처럼 비단을 입었는데 따르는 병사가 없었고, 이름은 끝내 대지 않았으며, 말투는 동쪽 지방 사투리였다고요. 요시나카는 어릴 적 고즈케 지방에서 본 사이토 사네모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희끗하던 머리와 수염이 지금은 새까맸습니다. 사네모리와 가까웠던 히구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네모리는 늘 '예순이 넘어 싸움터에 나간다면 늙은이라고 얕보이지 않도록 머리와 수염을 검게 물들이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목을 씻기자 흰머리가 드러났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기소 요시나카는 병력이 아니라 속임수와 시간 싸움으로 이기는 지략가입니다. 사이토 사네모리는 일흔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헤이케의 노장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스스로 고릅니다. 데즈카 다로는 적에게도 예를 갖추는 시나노의 무사이고, 히구치 가네미쓰는 밤 기습의 뒤쪽 부대를 이끌었으며 옛 벗의 목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인물입니다. 헤이케의 총수 다이라노 무네모리는 회상 속에서 사네모리에게 비단 옷을 허락합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것: 부끄러움과 남는 이름

사네모리가 비단 옷을 입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 후지강 전투에서 후지 늪의 물새 떼가 날아오르는 소리에 헤이케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던 일을 늙은 날의 수치로 여겼습니다. 이번 북쪽 원정에서 죽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원래 에치젠 출신이었기에, '고향에는 비단옷을 입고 돌아간다'는 옛말을 들어 무네모리에게 비단 옷을 청했고, 무네모리는 감동해 이를 허락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는 비파를 타는 눈먼 이야기꾼들이 읊던 작품으로, 여기서 따른 가쿠이치본이 표준 판본이 되었습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권세는 반드시 쇠한다'는 것입니다. 구리카라는 헤이케의 힘이 하룻밤에 무너지는 장면이고, 사네모리의 이야기는 그 몰락을 한 사람의 선택으로 보여 줍니다. 전쟁은 이길 수 없어도 어떻게 기억될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일본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무사 가운데 한 명이 되었고, 훗날 노(能) 작품 「사네모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만화판에서 바꾸고 더한 부분

원전은 뼈대만 전하고, 장면의 그림은 만화가 채웠습니다. 산의 지형과 날씨, 달빛, 병사들의 표정, 낮 싸움의 모습, 밤 기습의 신호 방식은 모두 작가의 연출입니다. 원전에는 앞뒤에서 함성을 주고받았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사네모리가 비단 옷을 입을 때의 속마음, 데즈카 다로와 맞붙는 세세한 동작, 목을 씻는 장소와 사람도 상상으로 그린 부분입니다. 원전에 남은 것은 왼쪽에서 갑옷 자락 아래를 찔렀다는 골격 정도입니다. 다만 사네모리가 히구치에게 머리 염색 이야기를 하는 회상은 '늘 그 이야기를 했다'는 원전의 말에 근거한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에는 후대 자료에서 온 것도 있습니다. 목을 씻었다는 '구비아라이 연못'은 지역 전승과 노 작품에서 온 이야기이고, 사네모리가 갓난 요시나카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겐페이 조스이키』 같은 작품에 나옵니다. 가쿠이치본에는 요시나카가 어릴 때 그를 보았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또 요시나카가 우는 장면으로 그리는 각색이 많지만, 가쿠이치본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분명히 히구치입니다.

만화로 읽기

구리카라 고개의 밤 기습과 흰머리가 드러나는 순간을 그림으로 보고 싶다면, Manga Portal의 『헤이케 이야기 ―겐페이 전쟁, 교만한 자의 최후―』 제7화를 읽어 보세요. 모든 화를 회원가입 없이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이번 화부터 읽어도 좋고 제1화로 돌아가 겐페이 전쟁을 처음부터 따라가도 좋습니다.

이 화의 등장인물

기소 요시나카
가짜 깃발과 시간 끌기, 밤의 협공으로 구리카라 고개에서 헤이케 대군을 무너뜨린 겐지의 장수입니다.
사이토 사네모리
흰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비단 옷을 입은 채 시노하라에서 홀로 끝까지 싸운 헤이케의 노장입니다.
데즈카 다로
홀로 남아 싸우는 노무사를 칭찬하고 예를 갖춰 맞붙은 끝에 그의 목을 거둔 시나노의 무사입니다.
히구치 가네미쓰
구리카라에서 적의 뒤로 돌아가 기습을 이끌고, 시노하라에서 사네모리의 목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린 요시나카의 중신입니다.
다이라노 무네모리
헤이케의 총수로, 회상 장면에서 사네모리의 청을 받아들여 비단 옷을 허락합니다.
미나모토노 유키이에
요시나카의 숙부로, 별동대를 이끌고 시오산에서 싸우다 고전해 요시나카에게 구출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구리카라 고개 전투는 어떤 전투인가요?

1183년 기소 요시나카가 도나미산에서 헤이케의 대군을 밤까지 산속에 붙잡아 두었다가 앞뒤에서 들이친 전투입니다. 어둠 속에서 무너진 헤이케는 구리카라 골짜기로 떨어졌고, 헤이케 이야기는 7만여 기가 골짜기를 메웠다고 전합니다. 이 승리로 요시나카는 수도로 향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사이토 사네모리는 왜 머리를 검게 물들였나요?

늙은 무사라고 적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흰머리로 젊은이들과 앞자리를 다투는 것도 우스워 보일 것이라 여겨, 머리와 수염을 검게 물들이고 싸움터에 나섰다고 히구치가 전합니다.

사네모리는 왜 비단 옷을 입고 싸웠나요?

후지강 전투에서 싸우지 않고 달아난 일을 부끄럽게 여겨 북쪽 원정에서 죽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에치젠이었던 그는 '고향에는 비단옷을 입고 돌아간다'는 옛말에 따라 무네모리에게 비단 옷을 청했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구리카라 전투에서 횃불 단 소 떼 작전은 사실인가요?

뿔에 횃불을 단 소 떼는 유명한 장면이지만, 『겐페이 조스이키』 같은 다른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표준 판본인 가쿠이치본 헤이케 이야기에는 없습니다. 가쿠이치본에서는 깃발과 시간 끌기, 어둠 속의 함성으로 승리합니다.

사네모리가 어린 요시나카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원전에 있나요?

그런 이야기는 『겐페이 조스이키』 등 후대 작품에 나온다는 설이 있습니다. 가쿠이치본에는 요시나카가 어릴 때 고즈케에서 사네모리를 본 적이 있다는 내용만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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